방과 후의 나라-말랑갯티학교에서 배우는 느린 교육의 시간

Hyekyung Hwang
Hyekyung Hwang4 min readNov 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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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에서 시작된 나의 지역살이 기록 ②


1. 아이가 방과 후에 친구를 만난다는 것

도시에서는 하교 시간이면 학교가 이미 비어 있었다.
놀이터엔 바람만 지나가고, 학원차만 드나들었다.
아파트 단지에 살지 않으면 친구를 사귀기도 쉽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도 쉼과 회복이 필요했다.
아이의 농어촌 유학이 계기가 되어 강화로 이주했다.
그 시작점이 ‘말랑갯티학교’. 인천시교육청이 운영하는 가족체류형 농어촌 유학 프로그램이다.

강화로 이사 오고 나서야, 방과 후의 풍경이 달라졌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논다.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마을길을 걸어다닌다.

아이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 2학년 되면 도시 학교로 다시 돌아가야해? 안가고 싶은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놓인다.
이곳의 일상이 아이에게는 이미 ‘살아 있는 배움’이기 때문이다.


2. 작은 학교의 시간

내가 사는 마을의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적다.
덕분에 선생님들은 아이의 성향과 기질을 세심하게 살핀다.
누구는 낯가림이 심고, 누구는 손재주가 좋고, 누구는 이야기를 잘한다는 걸 금세 알아차린다.

그런 교육은 시험지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자기 속도로 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교육이다.

도시의 학교에서라면 눈에 띄지 않았을 내 아이의 천천한 리듬이, 이곳에서는 존중받으며 자란다.


3. 놀며 배우는 하루

이곳에서는 배움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수영장 강습비는 한 달 3만 원. 월·수·금 세 번의 강습을 받는다.
돌봄교실도 방과후 수업도 대부분 무료로 운영된다.

도시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을 찾기 위해 검색하고, 경쟁하듯 신청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부모들끼리 정보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이를 중심으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아직은 행정의 지원이 충분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언젠가 이런 교육이 행정의 든든한 뒷받침 속에서 더 단단히 뿌리내리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강화의 교육은 한층 더 든든해질 것이다.

아이는 밖에서 뛰어놀다 들어와도 또 무언가를 만든다.
영상이나 게임을 보기도 하지만, 그건 잠깐이다.
밖에서 놀 시간이 더 많으니까.


4. ‘모야’에서 배우는 손의 언어

아이가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 자람도서관 안의 ‘작업실 모야’다.
이곳은 어린이를 위한 작은 공방이다.

공방지기 ‘바람’은 아이들에게 딱 한 가지, 안전 규칙만 알려준다.
그다음부터는 아이들의 시간이다.
그들은 재료를 만지고, 상상한 것을 직접 만들어본다.

아이는 아직 조각칼은 무섭지만, 빨대와 테이프만 있으면 원하는 장난감을 뚝딱 만들어낸다.

그 손끝의 움직임에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감정이 담겨 있다.
아이들이 만든 장난감은 도서관 한켠에 전시되고, 다른 친구들은 그것을 보며 또 다른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렇게 창작의 에너지가 아이들 사이를 흐른다.


5. 함께 자라는 마을

주말이면 가족 모임이 있다.
농어촌 유학으로 강화에 이주한 부모들이 모여 지역을 탐방한다.
갯벌에서 풀게를 잡고, 전설이 깃든 느티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다.

가끔은 전등사에 들러 어린이 법회에도 참여한다.
예불 대신 자연놀이·만들기·요리 프로그램이 열린다.
믿음을 떠나,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환대하는 커뮤니티이다.

나는 절밥을 좋아한다.
소박한 반찬인데도 유난히 맛있다.
아마 마음이 고요해서일 것이다.
'발우공양'을 아이에게 알려주며 남김없는 식사를 함께 한다.
집에서는 어림도 없지만, 공양간에서는 통한다.
학교 밖의 모든 경험이 교육이 된다.


6. 스스로 만들어가는 교육

강화에 살며 깨달은 게 있다.
교육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필요한 프로그램이 없으면 직접 만든다.
요즘은 선생님들과 함께 겨울방학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레고로 감정을 표현하고,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는 활동이다.
‘공감의 레고’라고 이름 붙였다.

도시였다면 이런 시도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좋아요, 함께 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작게 시작해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겨울방학을 앞둔 지금도 아이와 함께 하는 ‘한 해 돌아보기’, ‘좋은 어른 인터뷰하기’ 같은 프로젝트를 작당모의 중이다.


7. 다양성이 자라는 학교

처음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졌으면 한다.

강화에는 인천 유일의 대안교육 특성화고인 ‘산마을고등학교’가 있다.
‘자연, 평화, 상생’을 교육철학으로 삼고, 전교생은 60명 남짓이다.
학생들은 텃밭을 가꾸고, 악기를 배우며, 계절마다 통합기행을 떠난다.

진학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교육이다.


8. 나의 고백

디지털 교육의 기회는 어디서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자신을 아는 힘,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감각이다.
그건 자연과 가까이 있을 때 훨씬 잘 배워진다.

농어촌의 작은 학교로 오면 아이가 즐겁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즐겁다.
아마 퇴사 후 처음으로, ‘나답게 숨 쉬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웃음과 내 일상의 평온이 서로 닮아간다.
그 얼굴이, 나를 닮았다.

📌 참고: 인천시 농어촌 유학 '말랑갯티학교'란?
- 2025년부터 본격 운영
- 강화·옹진 15개 학교 중심
- 2024년 68가구 모집에 130가구 지원
- 체류비 등 지원
- 자세한 정보: https://www.ice.go.kr/town/cm/cntnts/cntntsView.do?mi=12501&cntntsId=1145